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당시 독일령이던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살에 고아가 되어 난민 수용소를 떠돌았고,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실어증에 걸려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쪽 친척이 치열한 노력 끝에 그를 찾아냈고, 입양했습니다. 새로운 가정에서 배운 피아노는 마음의 문을 닫았던 소년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1965년, 에센바흐는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재능을 빛냅니다. 에센바흐의 음악성을 눈여겨본 지휘자 조지 셀은 그에게 지휘를 가르쳤습니다. 셀과 카라얀은 그의 지휘 멘토였죠. 에센바흐는 취리히 톤할레 관현악단, 휴스턴 교향악단, 파리 관현악단, The Philadelphia Orchestra 등을 비롯해 여러 주요 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거쳤습니다. 그의 지휘는 풍부한 루바토와 즉흥적인 템포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은 늘 높이 평가됩니다. 또한 그는 피아니스트 Lang Lang, 소프라노 Renée Fleming 등 여러 음악가의 멘토이기도 합니다. 에센바흐의 음악은 감정에 충실합니다. 즉흥적으로 셈여림과 템포 등을 해석하며 독특한 잔상을 남기죠. 에센바흐의 자유로운 기질은 2003년 피아니스트로서 발매한 'Beethoven: Piano Sonatas Nos. 29 - 32 & 6 Bagatelles'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Matthias Goerne와 녹음한 여러 가곡 음반에서는 실내악 연주자의 모습도 엿볼 수 있습니다. 지휘자로서는 Renée Fleming, 휴스턴 교향악단과 연주한 'R. Strauss: 4 Last Songs - Orchesterlieder - Der Rosenkavalier Suite' (1996), 여러 악단과 녹음한 힌데미트 음반들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