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개성 강한 피아니즘을 보여준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긴 손가락을 지닌 그는 피아노를 치는 방식부터 남달랐습니다. 팔에서 나오는 힘이 아닌, 손목을 낮추고 손가락으로만 컨트롤하는 주법은 그 누구도 쉬이 따라 할 수 없습니다. 페달 역시 최소한으로 사용함에도 흐름이 매끄러워 놀라움을 줍니다. 1903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호로비츠는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그는 9세에 키이우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11세에는 스크랴빈(Scriabin)을 만나 함께 연주하기도 했죠.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연주 활동을 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1925년에 러시아를 떠난 후에는 2년 동안 유럽에서 투어를 돌았습니다. 1928년에는 뉴욕 카네기 홀 데뷔 무대에서 차이콥스키(Tchaikovsky) '피아노 협주곡 1번(Piano Concerto No. 1)'을 연주했는데, 전석이 매진됐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와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은 베벌리힐스에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집에서 종종 함께 피아노를 쳤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기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3번(Piano Concerto No. 3)'을 호로비츠가 더 잘 친다고 이야기했죠. 그러나 최고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도 무대 공포증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불안에서 비롯된 우울증을 겪었고 긴 공백기를 갖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잠적은 대중이 더 큰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무려 12년 만의 복귀 무대였던 그의 1965년 카네기 홀 콘서트는 오랫동안 화제를 모았습니다. 호로비츠는 바로크의 코렐리(Corelli)부터 현대의 스크랴빈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했습니다. 많은 음반을 남겼는데, 자유로운 해석과 차별화된 음색을 들려주는 그의 레코딩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60여 년 만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개최한 독주회를 담은 'Vladimir Horowitz - Horowitz in Moscow' (1986)가 대표적인 명반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