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프로듀서 Dr. Luke와의 소송, 이후의 법적 싸움, 레이블과의 계약 분쟁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고 나서 처음 발표했던 세 번째 정규 앨범 'Rainbow'는 그녀의 강렬한 의사를 내비치는 앨범이었다. 모두가 기대한 Kesha의 시그니처 댄스 팝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전반적으로 대담한 음악적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새 앨범 'High Road'로 화려하게 컴백한 Kesha.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곡들을 통해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한결 개운해진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그동안 너무 서둘러 달려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앨범은 최대한 여유를 갖고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사실 앨범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장르, 어떤 사운드를 만들고 싶은지 정확하게 몰랐어요. 그저 시간적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게 놔두면 과연 어떻게 될지 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세상의 눈과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했다는 Kesha. 더욱 강인하고 가뿐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과연 새 앨범 'High Road'에서 어떤 얘기들을 풀어놓았을지, 그녀가 직접 꼽은 최고의 트랙들과 그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알아보자. Tonight "막 앨범 작업을 시작했을 때 사실 확신이 없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지금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정직하게 드러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렇다고 그저 신나는 노래나 부르면서 현실을 회피하고 싶진 않았어요. 있었던 일을 은폐하거나 축소시키고 싶지도 않았고요. 괴로운 일이 한 번 있었다고 끊임없이 우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이런 점을 사운드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안 좋은 일 이후 발라드 곡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렬한 곡들을 담았죠. 그래서 전작 'Rainbow'와 사뭇 동떨어져 있어요. 한 편으로 이 앨범은 제 팬들에게 바치는 것이기도 해요. 온갖 구설수에도 끝까지 나를 믿어주고 지켜봐 준 사람들, 그 소중한 팬들에게 제가 돌아왔음을 알리고 싶었어요. 함께 끝내주게 멋진 밤을 보낼 준비가 됐고, 오늘이 바로 그 밤이라는 걸 말이죠. 그렇게 선포하듯이 앨범 문을 열고 싶었어요." Resentment (feat. Brian Wilson & Sturgill Simpson & Wrabel) "무려 Brian Wilson, Sturgill Simpson에 Wrabel까지 저를 위해 모여줬다는 게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 나요. 그저 꿈만 꾸던 일이지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는데 진짜로 벌어졌잖아요.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에요.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걸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아마도 세상 모든 신들께서 저를 엄청 예뻐하시나 봐요. Beach Boys의 'Pet Sounds'가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역사적 걸작이라는 건 아마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일 거예요. 팝 음악의 신기원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저는 Brian Wilson을 진심으로 존경해요. 그는 항상 제 콜라보 희망 리스트 0순위에 있었죠. 그가 제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어요. 그가 빠른 곡을 좋아할지 느린 걸 좋아할지 알 수가 없어서 혼자 안절부절 했는데, 이 곡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었죠. 그다음엔 Sturgill Simpson을 섭외해야겠다 마음먹고 만나러 갔어요. 거의 납치하다시피 극장으로 끌고 가서 같이 노르웨이 블랙 메탈에 관한 영화 'Lords of Chaos'를 봤죠. 그가 갖고 나온 기타는 제 차에 내팽개쳐두고서요. 근데 영화가 생각보다 너무 잔인한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피투성이였거든요. 억지로 이런 하드코어한 영화를 보게 해서 괜한 충격을 준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니까요." My Own Dance "이번 'High Road' 앨범을 위해 맨 처음 쓴 팝송이에요. 이 곡에서 저는 내가 이 앨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고 더불어 대중들이 이 앨범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곡을 쓸 때 우려되는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저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할 권리가 있잖아요. 근데 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욕을 먹는 거죠? 설령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이제 신경 안 써요. 어떤 상황에서든 저는 제 만족과 행복을 최우선시 할 거거든요. 쿨한척하며 팝 음악을 쓰지 않을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High Road "제목에는 명백하게 두 가지 뜻이 있어요. 2017년에 'Praying'을 발표하고 나서 사람들은 제가 음악적으로 매우 엄숙해지고, 확실히 보장된 순탄한 길을 택할 거라고 예상한 것 같은데, 사실 정 반대거든요. 이 노래에서 저는 사람들이 쓸 데 없이 지껄이는 말이나 짜증 나는 소리가 예전에 얼마나 저를 괴롭히고 성가시게 했는지 얘기하고 있어요. 특히 한 마디만 잘못해도 당장 적으로 돌아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이런 세상에서 말이에요. 처음에는 그런 세상의 눈을 항상 의식하고 불안해했지만, 이제 전처럼 사람들 말을 많이 신경 쓰지 않아요. 약간 해탈했달까. 그냥 또 저러는구나 하고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거죠. '이거 알아? 나는 그냥 웃으면서 이 멍청한 세상을 한껏 비웃어 줄 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요." Father Daughter Dance "저는 아버지 없이 자랐어요. 하지만 그 사실을 노래로 옮길 생각은 없었죠.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달까. 아무튼 그랬는데, 언젠가 정말 편하고 저를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이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그냥 입에서 물 흐르듯 흘러나왔죠.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문을 연 거예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줄 미처 몰랐어요. 너무나 나약하고 창피한 기분이었고, 온갖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들었죠. 자라면서 품었던 수많은 의문, 답을 얻을 수 없어 꽁꽁 숨겨뒀던 갖가지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요. 원래는 이 곡을 앨범에 실을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지인 몇 명에게만 들려줬죠. 근데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다들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강한 여성이 된다는 게 1년 365일 늘 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요. 한 치의 나약함도 허용 못 한다는 태도로 스스로를 옥죌 필요는 없다는 뜻이겠죠. 그래서 이 노래를 공개하기로 했어요. 저는 남편 없이 홀몸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한 여성들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엄마의 선택과 양육 방식 또한 존중하고 싶어요. 비난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오히려 존경하죠." Raising Hell (feat. Big Freedia) "Kesha 크루즈에서 Big Freedia를 만났어요. 크루즈를 타본 건 난생처음이었는데, 마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뮤직 페스티벌 같았어요.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 있는 힘껏 떠들어댔죠. 보트에 탄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만끽하면서 인생 최고의 한때를 보내고 있었어요.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더불어 여러 사람들과 유대를 맺으면서 말이에요. 옷을 홀딱 벗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죠. 배는 마치 마법이 펼쳐지는 작은 섬 같았어요. 그 위에서 보낸 4일의 시간이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죠. 어쨌든, 배 위에서 Big Freedia의 쇼를 보고 나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고, 꼭 그녀와 곡을 써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사실 저는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것에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종교적 신념과 실제 삶이 단절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랐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든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든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아요. 이성을 사랑해야 하고 동성은 사랑하면 안 된다거나 하는 식의 배타적 사고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고요. 진정한 구원이라는 건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 때, 서로를 돌보고 모두가 긍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비로소 찾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발가벗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술에 취해 거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저는 이 노래를 통해서 크루즈에 있던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정말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거든요."